[애니메이션. 게임 "안의 사람"] 제 7회: 애니메이션 감독 나카무라 료스케 인터뷰
애니메이션, 게임 업계의 일선에서 활약하는 크리에이터들을 인터뷰하여 일하는 방식이나 민낯에 접근하는 본 연재. 제 7회는 애니메이션 감독 나카무라 료스케 씨. 감독으로서 망량의 상자, 달려라 메로스, 표적이 된 학원, 아이우라, 재와 환상의 그림갈 등, 수많은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낸 나카무라 씨의 경력이나 작품에 대한 고집은? 애니메이션 제작 이외의 활동이나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어른이 보는 어린이를 그려낸 작품' 이 아닌, '어린이의 눈높이까지 내려간 작품'
---오늘은 바쁘신 와중에 감사합니다. 일단은 나카무라 감독님께서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나카무라 좋아하는 작품은 많이 있지만 제가 영향을 받았다고 자각하고 있는 작품은 물어보셔도 대답하기가 쉽지 않네요. 뭔가 잘 아실 만한 작품을 들 수 있으면 좋을텐데.
저는 아동문학을 좋아해서, 대학 시절에는 아동문학의 서클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재와 환상의 그림갈(2016) 에서도, 저의 취향이 무의식 중에 드러나 있었다고 생각해요. 스탭들에게는 '쥬브나일' 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었는데, 아동 문학이 그 외 매체와 다른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하고 질문을 받으면, 사실은 저도 잘 정의가 내려지지 않네요.
딱 하나 확실한 것은, '어른들이 본 어린이를 그려낸 작품' 과 '어린이의 눈높이까지 내려긴 작품'은 다르다는 것. 제가 사랑하는 아동문학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등신대의 어린이와 그 동료들을 그려낸 작품이고, 어른의 눈으로 본 안전한 어린이는 흥미가 없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린이다운 느끼는 법과 생각하는 법이거든요. 그건 어떤 때에는 독자를 상처입힐 수도 있는 위험한 섬세함을 포함한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든 지나온 아이 시절을, 등신대로 간접 체험하려고 하는 자세를 포함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성적인 구별을 두어도, 아이 시절에는 그러면 안된다고 하는 말은 못하죠. 어른들이 보면 없는 것처럼도 보이지요. 하지만 어른들과는 다른 느끼는 법, 존재하는 법으로 보면 역시 그건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어요.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의, 중학생은 중학생의 느끼는 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서 통하면 좋겠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보면, 분명 아동문학의 제가 좋아하는 부분과 같은 부분을 좋아하시고, 작품 속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시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런 작품에 흥미가 있으셨던 거네요.
나카무라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과, 어린이가 관객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제가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선택한 큰 이유입니다. 훌륭한 아동문학은, 어린이가 읽어도 당연히 재미있겠지만, 어른들이 감상해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상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표로 하고 있는 분은 있으신가요?
나카무라 누군가 예를 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자기 일은 자기자신이 제일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조금 전에 미야자키 감독의 이름을 말씀드렸지만, 그렇다고 영향을 받았다, 고 하는 쉬운 얘기는 아니고요. 단지 저는 많은 아동문학, 문학, 영화나 만화를 봐 왔고, 음악이나 최근에는 연극 같은 것도요, 그런 모든 것이 제 혈육이 되어, 제 작품이 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매일 생활하면서, 매일 감사하는 마음뿐이죠. 작품을 만드는 것은 그런 식으로 제가 태어나서부터 혈육이 되어 온 것들이 전부 동원되어서 만들어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매드하우스에서 연출, 각본, 원화를 배우다
---나카무라 감독님은 도쿄대학을 졸업하시고 난 1999년에 매드하우스에 입사하셨는데요.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업계를 희망하셨나요?
나카무라 애니메이션을 보게 된 건 대학 2학년 때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드문 일인데, 저희 집이 거의 TV를 보지 않는 집이었어요. 낮 시간에 TV는 기본적으로 언제나 꺼져 있었고, 밥 먹을 때에 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옛날에는 드문드문 그런 집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텔레비전 이외의 일에 몰두해서 저 나름대로 즐겁게 생활해 왔거든요. 애니메이션 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세상의 TV 방송을 잘 모르는 것 뿐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동세대의 작가가 보고 있었던 애니메이션은 잘 모르지요. 이건 지금 보면 저에게 있어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어요. 이제 와서 제 과거를 바꿀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 특징으로서 살려 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조금 부정적인 말씀을 드리면, 저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제가 뭘 하면 좋을까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업계에 어떤 다짐을 하고 왔다기 보다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래는 못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3년간 어떤 곳인가 한 번 볼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얄팍한 동기로 이 업계에 온 인간이, 지금 이렇게 애니메이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수없이 좋은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지 기자를 동경하던 시기도 있으셨던 모양이네요.
나카무라 지금도 Number(일본의 스포츠 종합 잡지) 같은 곳에서 글 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웃음) 만약에 오퍼를 받으면, 그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쓰려고 할 것 같은데요.
기자 중에도 스포츠지 기자는 '각색' 바꿔 말하면 '연출' 하는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 생각하면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쓰는 것'에 대해서도'연출'을 하는 데에 흥미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스포츠 선수는, 실제 인생 이외에, 선수인생이 있지 않습니까. 그 선수 인생 속에서는, 실제 인생 이상으로 진하게 농축된 드라마가 있고. 젊은 시절의 저는 거기에 매료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머리를 쓴 연출은 좋아하지 않고, 더욱 자연체를 좋아하게끔 저 자신도 변화해 왔지만, 젊었을 때에는 그런 기사를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했었다, 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스포츠라고 하면, 배터리(2016)의 엔딩 그림 콘티과 연출도 하셨죠.
나카무라 배터리는 아동문학이고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해서, 참가할 수 있어서 정말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드하우스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다면?
나카무라 아동문학 서클에서 함께했던 히라야마 사토시 군이 매드하우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고 말하는 걸 들었거든요. 딱히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만큼, 가벼운 기분으로 정했던 건 있어요.
당시 매드하우스에는 아사카 모리오 씨가 20대에 감독을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럼 연출이 되기도 쉬울 거라는 취지였지만, 아사카 씨 같은 천재와 비교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고 생각하죠 (웃음)
---감독의 블로그에는, 코지마 마사유키 감독을 스승이라고 부르고 계신데요.
나카무라 저는 제작진행으로 매드하우스에 입사했는데요, 처음으로 한 일이 코지마 감독의 마스터 키튼(1998-99) 이었습니다. 첫 연출은 니시무라 사토시 감독의 하지메노 잇포(2000-02)였고요. 그 때부터 코지마 감독 작품에는 인연이 있었어요. 그 후의 하나다소년사(2002-03)에서는 최대로 5화나 연출을 맡았습니다. 한 화마다 성장해 가고 있는 감각을 느꼈고, 충실한 기분이었지요.
애니메이션 연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코지마 씨로부터 배운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표현을 난해하게 하거나, 특이한 편집을 하거나, 극단적인 렌즈를 고른다던가 하는 연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스트레이트하게 인간을 파헤쳐서, 세계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는 것. 연출의, 왕도의 기본으로 배워햐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젊었을 때 배울 수 있었던 건 정말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과는 다릅니다. 함께 일을 하는 중에 이런저런 질문을 하거나, 코지마씨의 기술을 연구해서, 제가 맘대로 제 것으로 하는 것이지요. 옛날 말로 하면 '훔친다' 고 하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코지마 씨를 스승이라고 해도, 코지마 씨는 나 아무 것도 안 했어 하고 말하실 것 같지만,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스승과 제자는 그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와 코지마 씨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최근에는 약간 드물 정도의, 전형적인 스승과 제자라고 생각해요.
---경력 시작부터 각본을 써 오셨는데요.
나카무라 입사한 직후에는 그림을 전혀 그리질 못해서, 당시 사장이셨던 마루야마 마사오씨나 우라하타 타츠히코 씨가 각본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죠. 연출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은 각본의 길로 다시 돌아갈 뻔 하기도 하고요. 우라하타 씨의 시리즈 구성 밑에서 30편 이상은 썼습니다. 더 많을지도요. 연출 공부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죠.
---원화를 그리신 적도 있는 모양인데, 독학이셨나요?
나카무라 독학입니다(웃음) 모교의 대선배이기도 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감독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일' 이라고 어떤 인터뷰에서 말씀하셨거든요. 무심코 그걸 진짜로 믿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왔는데, 매드하우스의 연출가들은 하여간에 그림을 잘 그려요. 그건 충격이었죠.
이유라고 하면 아마도 당시의 매드하우스가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을 이상적인 연출가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카와지리 씨 같이 일을 해야 된다고 누가 말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애니메이터가 연출에게 요구하는 것을 총합해 보면, 그런 의미밖에 안 되는 거에요.
애니메이터에게 '말이 아닌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을 철저히 하고 있었죠. 그래서 저도 연출을 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그려야만 했어요. 당시에는 "이러다가 금방 잘리겠어, 나라도 자르겠다" 하는 느낌이었죠 (웃음)
하지만 신기한 게, 하루에 수십 장을 그리다 보면 조금씩 잘 그리게 되는 거에요. 제일 중요한 것은 잘 그리게 되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행운이었던 건, 제가 연출했던 회에 몇 번인가 애니메이터인 하마다 쿠니히코 씨가 작화감독을 맡아 주셨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몬스터(2004-05)의 제 29회에서, 그 때는 제가 몇 번을 그려도 전부 수정이 되어버렸어요. 수정된 걸 보고 "그렇구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면서 그걸 놓치지 않고 복사했죠(웃음)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보면서 연구했어요. 저는 그림 재능은 없지만, 연구하는 건 좋아해서 이럴 때에 그걸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기술을 조금씩 훔쳐온 거죠.
저는 연기의 핵심에 저 나름대로의 궁리를 더하는 것을 좋아해서. 예를 들면 전화의 수화기를 든다 라고 하는 연기를 연출했을 때, 원화맨의 연기로도 충분히 좋았지만, 저 나름대로 한 품을 더했어요. 그게 하마다 씨한테 가면, 그 배의 원화 장수가 되고, 거기다가 엄청나게 멋있는 거에요. 거기다 움직임 속에서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무언가, 연기 위에 애니메이터의 특수한 무언가를 느낀 겁니다.
뎃생이나 구도같은 기술은 어떤 그림을 그릴 때에도 공통적인 요소지만, 우수한 애니메이터는 움직임과 타이밍에 이 사람만의, 이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이 이 화의 하마다 씨의 일이었어요. 그건 수화기 컷 이외에도 정말로 많이 있었죠. 그리고 그걸 느끼면 놓치지 않고 복사를 했어요 (웃음)
그 이후에는 다른 작품에도"아, 이 움직임은 하마다 씨다" 하고 알 수 있게 되었죠. 특히 손 움직임에는 특징이 있어요. 애니메이터에 한정하면, 제일 공부가 된 건 하마다 씨 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가르친 적 없다고 하시는 것도, 아마 코지마 씨와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육아를 경험하고 감독 데뷔
---몬스터 종료 후부터 데스 노트 시작까지 약 2년간 육아를 하신 적도 있는 모양인데, 일은 쉬고 계셨던 건가요?
나카무라 집에서 그림 콘티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저와 제 처는 둘 다 일을 하고 있는데, 둘이 얘기를 해서 제 처가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제가 육아와 가사를 메인으로 전담하면서 짬날때나 밤중에 조용히 그림 콘티를 그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남성분이 육아 휴가를 받는다는 건 드문 일이 아닌가요? 그 무렵에 어떤 생각이셨는지요?
나카무라 드물다고 할까, 당시에는 거의 없었을 거에요(웃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어서, "그 사람은 출세는 포기했나 봐", "안됐다" 하는 분위기였죠.
연출로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감독을 한다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면 업계에 들어와 5,6년이 지나가 있었죠. 덮어놓고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 건지 어쩔 건지 인생의 페이스를 조금 늦춰서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위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고, 눈 앞의 일이 재미있으면 그걸로 만족해 버리는 마음이 지금도 있거든요. 감독이 되고 싶어서 애니메이션 업계에 왔지만, 제가 원하고 있던 충실감이란 게 감독이라는 일 안에만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 정도로 각 회 연출이나 조감독이라고 하는 일이 재미있기도 했고요. 리더보다도 보좌역이 성격적으로 맞는다고 느낀 점도 있었고.
거기다 저는 같은 세대보다 빨리 결혼을 한 편이었고, 여유가 있어서 육아를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제 처가 일하러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기도 했어요. 감독을 하면 그것도 어렵죠. 그런 마음으로 아직 말도 잘 못하는 작은 아들을 보고 있자니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아들이 커 있었다' 같은 건 싫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지쳐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마루야마 씨로부터는 "애 키우느라 반쯤 업계를 떠나겠다는 인간한테는 앞으로 감독 일은 안 주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때 저는 그런 건 다 좋았어요. 어린 아들과 보낸 약 2년의 시간은, 제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2008년에는 망량의 상자로 감독 데뷔를 하셨죠.
나카무라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나카무라한테 감독을 시켜보고 싶다" 고 마루야마 씨에게 말씀해 주신 분이 계셨던 것 같아요. 마루야마 씨가 말씀하신 게 아닌 건 확실합니다. 감독이라고 들어도 금방은 확 오질 않았지만, 약 2년간 감정의 피로가 풀린 것도 있어서, 저 나름대로의 감독의 모습을 이미지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죠. 그 때 3년 빨리 감독을 안 해서 잘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감독의 감상은?
나카무라 감독을 했을때 도움이 되었던 건, 코지마 씨와 쭉 함께했을 때 배웠던 것들이었습니다. 코지마 씨는 좋게 말하면 전부 맡겨 주시는 분이고, 나쁘게 말하면 저한테 일을 다 돌리는 분이라 (웃음) 감독 일에서 제가 한 적이 없는 작업은 거의 없었어요. 유일하게 한 적이 없었던 게 시나리오 라이터에게 각본을 발주하는 작업이었는데, 그것도 제가 발주를 받는 입장에서 경험했던 거라서요. 그래서 처음 하는 것 투성이라 감독 일이 불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취재 대응 정도 아닐까요. 처음이었던 건.
---처음부터 혼자서, 감독을 문제없이 소화하셨다는 건가요?
나카무라 의뢰를 수락하기 전에, 동기인 아라키 테츠로 군에게는 상담을 했습니다. 아라키 군이 말해준 건 "지금까지 각 화 연출로서 납득가게끔 해 왔던 것이, 감독이 되면 100 밖에 능력이 안 되는 곳에 400 정도의 일이 오고, 자신의 노동 시간을 늘려서 필사적으로 200까지 해도, 남은 200은 손가락 틈으로 빠져 나가 버린다. 그것을 참으면서 지켜 보는 일이다" 같은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망량의 상자 때에는, 되도록 제가 각 화의 부담을 너무 많이 지지 않도록 하면서, 펑크가 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신경을 썼습니다. 사전에 아라키 군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그 후에도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스타일의 감독을?
나카무라 반대로 펑크날 정도로 해 보자고 생각한 일도 있어서, 표적이 된 학원(2012)이 그랬습니다. 맨 마지막 파트는 드디어 저 혼자서는 할 수 없게 되어서, 그 때에도 아라키 군이 도와주었습니다.
음악 현장에 요구되는 라이브 감
---재와 환상의 그림갈(2016)에서는, 음향감독도 맡으셨는데요.
나카무라 그림갈에서의 제 음향감독 일은, 역시 진짜 음향감독과 비교하면 잘 못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감안하고 말씀드리자면, 제 연출론을 꿰뚫는다고 하는 의미로는 작품의 완성도에는 공헌하고 있고, 그걸 좋다고 느껴 주시는 분에게는 듣기 좋은 음향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애니메이션 현장은 보통, 라이브 감이 없어요. 종이 위에 납득이 갈 때까지 다듬어서 상대방에게 전해주면 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음향현장은 굉장히 라이브 감이 필요한 장소이지요. 그게 제일 다른 점일까요.
저는 학생 때 연극을 조금 했었고, 연극에 관계된 서적도 나름대로 읽었기 때문에, 연기자가 연기할 때에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은 감각으로 알고 있어요. 예를 들면 그림으로 전달할 때 처럼 정보량이 많으면 좋다는 식으로는 안되죠. 연기는 더 직관적인 행동이거든요. 애니메이션의 연출 중에 감각적으로 여기가 바뀌질 않아서, 음향감독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림갈에서는, 저는 음향뿐만 아니라 영상에도 감독으로서 책임을 지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음향에 맞춰서 후일 영상을 조절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가능했습니다. 통상의 음향 연출보다도 유연한, 축복받은 환경에서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직업인으로서의 음향감독 분들과 비교해 주시는 건 영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제 안에서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있죠.
표적이 된 학원 이후, '3D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 을 살린 작품 만들기
---과거 인터뷰에서는, 표적이 된 학원의 미술배경은 회화적으로 그려달라는 지시를 하신 모양인데요. 거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요?
나카무라 당시에 사진 레이아웃이 굉장히 많아진 시기이기도 했어요. 종래의 미술의 방법론은 이제 필요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돌아와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미술도 등장했지만, 표적이 된 학원 무렵이 회화적인 미술로서는 가장 입지가 좁아진 시대 였죠.
당시 3D영화도 급속하게 발전한 시대이기도 했죠. 3D영화의 표현력이 처음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깊이가 생긴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보량으로 승부했을 때 이윽고 3D에는 승부가 안되는 게 보이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지요.
일부러 2D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왜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작품은 만들 수 없다는 시대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작화에 관해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림갈도 회화적이었는데요.
나카무라 표적이 된 학원 에서 한 것이 한 걸음 더 나아간 느낌이었죠. 카메라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서, 핀트로 말하면 완전한 팬 포커스(원경과 근경 모두가 화면 전체에 선명하게 나오도록 초점을 맞추어 촬영하는 기법)가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제가 애니메이션의 그림 만듦새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Methods'라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애니메이션도 언제나 실제라는 가정을 해서 어떤 렌즈를 선택하고 어떤 라이팅으로 촬영을 할 것인지 정하자, 라는 발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좁은 차 안이라면 보통의 광각으로는 촬영이 불가능하고, 어안 쪽 렌즈가 될 테니까, 투시법으로는 그릴 수 없는 부분의 굴곡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는 식이죠. 반대로 말하면, 망원 렌즈로 찍은 샷은 조리개에 따라 피사계 심도가 결정되어서, 핀이 맞지 않는 거리는 뿌옇게 보일 테니까, 애니메이션의 배경도 뿌옇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저도 그때까지는 망원 샷에서 캐릭터 뒷쪽의 배경은 뿌옇게 만드는 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옛날부터 팬 포커스 주의인 사람들이 있었고, 대표적인 사람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입니다.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은 손으로 그리는 건데 왜 뿌옇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지요.
저는 크게 말하면 오시이 씨의 생각에서 미야자키 씨의 생각으로 의견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건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2D애니메이션의 표현으로서 요구되는 감성이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면 뿌옇게 보이는 게 기분 좋은 배경은 처음부터 그렇게 그립니다. 단, 뿌옇게 하는 처리를 쓰지 않고 붓터치로 그렇게 하죠.
그림 이야기를 하자면, 물체의 색은, 고유의 색이라는 것이, 요컨대 색의 이데아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빛이 북합적으로 반사한 결과 우리들의 눈에는 결과적으로 그 색으로 인식되어 있는 겁니다. 2D셀이라면 움직이는 물체의 색을 이동에 따라 계속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3D라면 할 수 있게 되죠. 최근 3D작품은 벌써 세밀한 반사를 움직임에 맞춰서 충분히 복잡하게 제어하고 있어요. 이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하는 경향에 있기 때문에, 수 년 안에 2D작품은 색채의 표현력에서는 승부가 안 될 가능성이 있죠. 그 때에는 또 저 나름대로 2D가 색채로 싸울 수 있는 작전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떠신가요?
나카무라 제가 고집을 갖고 있는 부분 중에 하나가 캐릭터의 표정입니다. 애니메이션의 표정에는 희노애락 4개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림갈에서도 캐릭터의 복잡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에 무엇보다도 신경을 썼습니다.
현재의 3D가 2D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그건 클로즈업 연기의 표현력입니다. 옛날에 비하면 3D의 표현력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클로즈업을 했을 때의 캐릭터의 표정의 섬세함, 복잡함에서는 2D가 압도적으로 위라고 생각합니다. 3D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런 약점이 보이지 않도록 연출로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 걸 느낍니다. 그런 연출의 흔적을 보는 건 장르를 따지지 않고 좋아합니다.
---그림갈은 전투도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여유있는 분위기의 작품이었습니다.
나카무라 작금의 애니메이션은 밀도를 올린 작품이 많고 그런 작품의 재미도 충분히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거북한 느낌도 듭니다. 그래서 옛날보다도 지금은, 여러가지 의미로 정보량의 컨트롤이 연출에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그림갈도 그런 시행착오의 흔적이 많이 남겨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D로 할 때에는, 3D의 특성을 끌어낸 작품을 만들고 싶다
---3D애니메이션에는 관심이 없으신가요?
나카무라 저는 연출가이기 때문에, 3D는 3D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헐리우드의 3D애니메이션을 보면 3D만의 특성을 충분히 연출로 살리고 있어요. 지금까지 일본에서 만들어져 온 3D 작품은, 아직 연출상 그렇게까지 경험치가 쌓이지는 않은 게 아닐까 해요. 단순히 캐릭터가 3D에 컷 분할은 2D 그대로인 경우에는 조금 실망하기도 하죠.
헐리우드 정도가 아니어도, 3D의 특성을 또 다른 형태로 끌어낸 작품은 만들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최근에 주토피아(2016)에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약에 제가 3D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3D만의 특성을 충분히 살린 작품 만들기를 저 나름대로 해보고 싶어요. 그건 시나리오에서부터 이미 발상이 바뀌겠죠.
---2D도 3D도, 각자의 특성을 살린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으시다는 거군요.
나카무라 그렇습니다. 표적이 된 학원은 2D를 일부러 강하게 의식한 부분도 있어서, 짓누르거나 잡아 늘리거나 하는 표현을 많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오구로 유이치로 씨는 ど根性ガエル(70년대의 애니메이션으로, 한 소년의 티셔츠에 붙은 개구리가 소동을 일으키는 이야기)같다고 하셨지만 (웃음) 그런 표현을 3D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분야라고 당시에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3D는 그런 부분도 잘 어울리게끔 되어 있어서...표현하는 인간으로서 표현의 가능성이 진보하는 데에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망량의 상자에서 채용하신 촬영보드 시스템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카무라 미술감독은 장면마다 미술보드를 그려서, 배경의 방향성을 정하는데요, 그것과 같은 것을 촬영에도 도입했습니다.
장면 단위로 촬영의 방향성을 정하는 테스트 촬영을 하고, 거기서 정한 것은 타임시트에 적지 않아도 반영이 되어서, 그 이외의 컷 고유의 촬영 처리만을 타임시트에 적는 방법입니다. 촬영보드는 애프터 이펙트의 콤보지션 데이터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같이 복사 + 붙여넣기를 하면 바로 공유되니까요. 실제로는 컷마다 조절이 필요하지만, 대충 얘기하자면 이런 겁니다.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현장에서 이러한 방법을 채용해서 촬영표현을 통일하려고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 아무도 하고 있지 않았고, 촬영보드라는 말도 없었기 때문에, 제가 감독이 되었을 때 그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감독님의 작품에 스태프는 어떤 식으로 정하고 계신가요?
나카무라 전의 일에서 좋았던 분은, 기본적으로 그 다음에도 부탁드리는 걸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일이 좋았다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최고로 좋은 건 다시 부탁드린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일에 벌써 참여하고 계시거나, 스케쥴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같은 포지션으로 제일 길게 부탁드리고 있는 건 미술의 카네코 히데토시 씨와 촬영의 이가라시 신이치 씨 입니다. 두 분께는 망량의 상자 때부터 계속 일을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호소이 미에코씨도 망량의 상자에서는 총작화감독으로 참여해 주고 계시고요. 호소이 씨와 처음으로 함께한 일은 역경무뢰 카이지(2007-08)였습니다. 철골 건너기(제13-14화)는 중반의 클라이맥스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저와 아라키 군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의뢰가 왔죠. 제가 13화를 맡았고, 그 화의 작화 감독이 호소이 씨였는데, 함께 일을 했을 때 "과연, 이 화를 만들기 위해 부른 사람답다" 하고 느꼈어요. 엄청나게 파워풀하고, 대단한 분이었죠.
그 다음에 감독한 푸른 문학 시리즈의 달려라 메로스(2009)는 망량의 상자에서 전체의 밸런스를 잡는 것을 중시하고 있던 제가, 진짜로 2화분의 콘티 연출을 구석구석까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이어서, 그 '진짜'로 함께해 주실 수 있는 호소이 씨에게, 처음으로 캐릭터 디자인을 부탁드렸습니다. 그 후에도 표적이 된 학원과 그림갈에서도 계속해서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호소이 씨와는 감독님 자신의 동인 서클 '솔바람 공방'에서도 함께하고 계신데요.
나카무라 '솔바람 공방'은 6명의 멤버가 함께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호소이 씨의 일러스트집 제작을 메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호소이 씨는 자신의 선전 등은 전혀 하시지 않기 때문에, 공지와 정리하는 역이 제 담당입니다. 저희 서클은 옛날부터 동인활동을 해 온 게 아닌 나이가 든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하고 시작했다는 게 좀 다른 점일지도 모르겠네요.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호소이 씨는 일러스트를 그리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고, 저도 학생 시절에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끝까지 쓰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호소이 씨가 제가 일러스트를 그리게 되면 나카무라 씨는 소설을 쓰면 되겠다고 제안해 주셔서요. 호소이 씨는 그렇게 하고 있지만, 저는 아직 하질 못해서, 하게 되면 좋겠다 하고 생각해서...사실은 지금 하고 있습니다 (웃음)
---동인 활동의 감상은?
나카무라 '솔바람 공방'에서 배우는 건 많이 있습니다. 이벤트 등지에서,사러 오시는 분들과 직접 만나는 건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경험이지요. 저희들은 보통은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고객의 얼굴은 이미지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이것만큼은 안하면 모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히 '코미티아'를 좋아하는데, 이벤트에 갈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요. '솔바람 공방'을 시작했을 때 얘기했던 건, "우리들은 일단 프로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동인이라는 변명으로 만들지 않도록 하자. 우리들의 작품으로서 자신을 가지고 만들자" 라는 것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코미티아에 참가하는 여러분이 상업적인 출판물의 질을 뛰어넘는 것을 만들고 있다고까지 느껴져요. 크리에이티브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10대-20대 전반일 때, 어떻게 알아보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제작활동 과정이, 지금은 하려고만 하면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클 겁니다. 표현하다, 는 것에 대한 감각의 스타트가 완전히 바뀌어서, 가까운 미래에 자주 제작의 오리지날 애니메이션이 지금보다도 더 많이 나와도 이상하진 않겠구나 하고 느끼고 있어요.
---경력상의 전환점이 된 작품은 있나요?
나카무라 한 작품 한 작품이 전환점이에요. 저는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할 수가 없는 성격이라, 한 작품 한 작품, 집중해서 작업하는 스타일로밖에 일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 만드는 중에 저 자신이 바뀌어 가기도 했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성장하고 있다' 고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에게는 알기 힘든 부분이니까요.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요구되는 자질 능력은 무엇일까요?
나카무라 이 질문은 인터뷰를 하신 여러분들이 뭐라고 하실지 굉장히 흥미가 생기네요(웃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감독에게는 너무나 많은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모든 능력을 갖춘 사람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있는 분야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 명 한 명 모든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에게 지시를 받는 게 아니라 꼭 자기 자신이 정해야만 합니다. 또 자신 없는 분야라고 느끼는 부분은 이미지를 공유하고 표현해 주는 동료와 팀을 꾸리고, 또 처음으로 함께 일을 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생각하는 것을 정성을 다해 전하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크리에이티브한 것을 자꾸자꾸 해서, 세계를 좀 더 재미있게!
---이후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카무라 현재진행형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웃음)
---과거의 인터뷰에서는, 쿄고쿠 나츠히코의 '철서의 우리'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나카무라 망량 이후에 계속해서 쿄고쿠 씨의 시리즈를 하자 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저는 그렇게 제안했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꼭 하고 싶네요.
---동인활동 쪽은 어떠신지요?
나카무라 저는 이제 '동인' 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거기에 선을 긋는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본업은 애니메이션이고 동인활동은 여가로 한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분도 많은 것 같지만요, 애초에 제가 하는 표현을 애니메이션으로 한정짓지 않아도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몰두하지 않으면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 전체의 레벨이 올라갔다고 느끼거든요. 구별하지 않고, 선을 긋지 않고, 모든 것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것 이외의 감상은 지금의 저에게는 없습니다.
저희들의 일은, 벌써 있는 1을 100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것은 또 다른 노고가 필요하고, 모든 공정을 경험해 본 제가 넘어지는 건 어디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개인적인 활동에서 점점 상업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오셨지만, 저는 반대로 개인적인 활동을 더 알고 싶습니다. 저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살아가는 순서가 반대로 된 것 같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사는 어떠신가요?
나카무라 신 고지라(2016)는 재미있었습니다(웃음) 안노 씨 다운 것이 실사에서도 굉장히 충만해 있었어요. 애니메이션 출신의 실사 감독에게도,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무언가를 표현해서 승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라면 애니메이션 감독이 실사를 찍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거야말로 선을 그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지요.
단지 저는 아직 실사는 단순히 관객으로 있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팬의 여러분들께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나카무라 저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왔을 때, 이 일에 필요한 기술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해 왔고,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괴로운 일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즐기는 것도 재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재능은 누구나가 갖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은, 옛날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저도 즐기고 있으니까, 무언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은 여러분은, 뭐든지 자꾸자꾸 해 보세요.
지금은, 업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경계를 뛰어넘어 재미있는 것을 해 나가면, 분명 그것만큼 이 세상의 내일은 좀 더 재미있게 되어가지 않을까요.
●나카무라 료스케 프로필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도쿄대 졸업 후, 1999년에 매드하우스 입사. 2010년 5월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연출가로서 참가한 작품은 하지메노 잇포(2000-02,각본/연출), 하나다소년사(2002-02, 연출), 몬스터(2004-05, 감독 조수/각본/총 콘티/연출), 역경무뢰 카이지(2007-08, 총 콘티/연출), 바라카몬(2014, 오프닝 총 콘티/연출), 4월은 너의 거짓말(2014, 오프닝 총 콘티/연출/원화), 배터리(2016, 엔딩 총 콘티/연출), 3월의 라이온(2016, 엔딩 총 콘티/연출),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2016, 엔딩 총 콘티/연출) 등 다수. 감독 작품은 망량의 상자(2008), 달려라 메로스(2009, 푸른 문학 시리즈), 표적이 된 학원(2012), 아이우라(2013), 재와 환상의 그림갈(2016) 등이 있다.
굉장히 흥미를 갖고 있는 감독님이기도 하고, 망량의 상자-달려라 메로스를 좋아했어서 (역경무뢰 카이지도!) & 좋은 인터뷰여서 해석에 도전해 봤는데, 길기도 길거니와, 우리말로 하기 어려운 표현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다 해놓고도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올려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일선에서 활약하는 감독님의 생각이나 인생사를 알 수 있어 굉장히 좋은 인터뷰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 전해지면 좋겠네요(읽는 분이 계시다면)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부분과 오타 부분을 조금 고쳤습니다.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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