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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도쿄도사진미술관 유진 스미스 사진전 & 일본의 신진 작가전 vol.14


원래는 일본의 신진 작가전에 제가 관심 있는 작가가 참가하는 것 같길래 그걸 보러 가려고 했는데, 유진 스미스의 사진전도 하고 있길래 겸사겸사 보러 갔습니다. 유진 스미스 전과 일본의 신진 작가전 두 개를 같이 보면 1500엔 정도에 관람이 가능합니다.

주말 오후 느지막히 갔는데 입장권을 살 때 줄을 길게 서 있어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10분 정도 기다리자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이전에 쓴 포스트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1층에 있는 코인 로커에 짐을 맡길 수 있습니다. 100엔을 넣어야 하지만 짐을 빼면 돌려줍니다. 사람이 많아서 코인 로커가 꽉 찬 경우에는 입장권 파는 곳의 스태프 분들에게 말하면 짐을 맡아 줍니다.


유진 스미스 사진전은 지하 1층, 일본의 신진 작가전은 2층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유진 스미스는 두 말 할 필요 없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도 사진가이지요. 라이프 지에 사진을 싣거나, 매그넘에 소속된 적도 있고요. 

평소에 유진 스미스의 사진을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전시가 아닐까 합니다. 유진 스미스의 유명한 취재 사진은 거의 다 모여 있고, 그 사진이 실렸던 잡지나 사진집 등도 실제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사진을 보면서 느낀 것은 예술적인 관점보다는 보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찍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사진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시골 의사' 시리즈 같은,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거나 죽음을 맞았을 때의 사진 등은 그야말로 드라마보다도 드라마틱한 현실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하기보다는, 그 사진에 찍힌 사실이나 상황에 더욱 마음이 쏠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진 자체가 굉장히 명확하게, 또 아주 보기 편하게 찍혀 있어서, 5-60년 전의 사진일 텐데도 마치 어제 찍어 현상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현장감이 있었고요.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명확한 구도와 적당한 노출로 사진을 찍었던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또, 프린트는 입자가 아주 곱고 깨끗하며, 구도는 안정적이기까지 합니다. 드라마틱한 사진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낙원 뜰로 가는 길'이나, '미나마타' 관련 사진을 보면 유진 스미스의 예술적인 감각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는데, 원작 사진에는 딱히 제목이 붙어있지 않은 것들도 일본 전시에서는 임의로 제목과 설명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은 알겠지만, 너무 사진을 다 설명해 주고 있어 약간 김이 새는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고 볼 만한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1시간 정도에 다 볼 수 있었고 사람은 많았지만 관람하기 힘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신진작가 vol.14 무구와 경험의 사진' 포스터


다음으로 일본의 신진 작가전 vol.14 를 보러 갔습니다. vol.14 라고 하는 것을 보니 정기적으로 열어 주는 전시인 모양입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이번에 처음으로 보러 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관심 있는 작가가 참여하고 있었거든요. 바로 카타야마 마리(片山真理) 입니다. 

선천적으로 사지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카타야마 마리는 어린 시절에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으로 생활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또한 한 쪽 손은 손가락이 두 개 밖에 없고요. 그런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찍어 작품을 만들고 있는 분인데요. 특이한 의상을 입거나 소품 등을 직접 재봉을 해서 작업하고, 그런 소품들로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어 내고 있는 작가입니다.


제가 작가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작가가 생활하고 있는 군마에서 그녀의 개인전 '帰途 (on the way home)' 을 열었을 때였는데, 당시에 전시 유인물에 실렸던 사진이 너무나 임팩트 있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사진!!!!



제가 사는 곳에서 개인전이 열리는 군마의 다카사키까지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보러 가지 못했는데, 이번에 일본의 신진 작가전에 카타야마 마리의 사진이 전시된다고 하여 다녀왔습니다. 전시는 굉장히 좋았고요. 사진이 엄청나게 컸는데 (180 - 200cm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등신대 수준) 이것도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시장에는 그녀가 그린 그림이나 재봉 작품 등도 전시되어 있어서 다방면으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단 작품이 큰 만큼 작품 수가 많지 않았던 것과, 제가 보고싶었던 작품이 전시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역시 군마에서 했던 개인전을 보러 갔어야 했나 싶어요. 하지만 직접 그녀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카타야마 마리의 작품을 보면서 저 자신을 항상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제가 그녀의 작품이 아닌, 그녀의 장애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요. 사지 멀쩡하고 평범한 제가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때, 가감없이 드러난 그녀의 장애에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이 예술적인 관점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에 그녀의 작품을 보았을 때 느꼈던 충격 자체는 순수한 것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이 찍은 사진이었다고 해도 아마 좋아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작품을 볼 때 그것이 호기심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경각심은 항상 가지고 있으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작가가 아이를 낳은 모양이었습니다. (결혼 여부 등은 불명, 아마 개인적인 일이다 보니 밝히지 않을 것 같아요) 트위터를 보면 아이가 있어 굉장히 행복하다고 하네요. 단 육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 재봉 작업 등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합니다. 육아를 하면서도 그녀의 감성이 바래지 않길 바랍니다. 


입장할 때 나누어 준 유인물에 작가의 짧은 글이 실려 있어 해석해 보았습니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더보기로 넣어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