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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도쿄도사진미술관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전 - 센티멘탈한 여행



지난 주말에 도쿄도사진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전 '센티멘탈한 여행(センチメンタルな旅)' 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저는 아라키 노부요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진에 담긴 여성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도 선정성 등으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분이라… 평가는 개개인의 몫이 되겠지만 저는 좋으냐 싫으냐 물어본다면 싫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사진전에 간 것은,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집이 ‘센티멘탈한 여행 겨울여행 (センチメンタルな旅 冬の旅)’ 이기 때문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는 끊임없는 작업을 통해 몇백 권이나 되는 사진집을 만들어 왔는데, 그의 사진작가 생활이 시작된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아내 요코와 함께 떠난 신혼여행을 사진으로 기록한 ‘센티멘탈한 여행 (センチメンタルな旅)’ 입니다. 아라키는 당시 이 사진집을 자비로 출판하였는데, 이 사진집이 1971년 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표현이 굉장히 많습니다. 아라키는 긴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사적인 사진(私写真)’ 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사진집은 그야말로 사적인 사진들입니다. 둘이 함께 갔던 곳의 풍경 등도 있지만, 아내 요코의 누드나 둘의 내밀한 성애의 장면 등도 포함되어 있어요. 적당한 생략을 가미하거나 정적으로 찍은 사진들이 아닌, 그야말로 이것 좀 보라며 눈 앞에 들이미는 듯한 강렬한 사진들입니다.

이 사진집을 시작으로 해서 아라키의 아내 요코는 긴 세월 동안 아라키의 뮤즈가 되어 많은 사진의 피사체가 됩니다. 때로는 행복한 가정의 아내의 모습으로, 때로는 멋진 여성의 모습으로, 또 때로는 누드가 되어 그의 카메라 앞에 섭니다. 

둘의 이 작업은 1990년에 끝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 해 요코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아라키는 둘의 신혼여행을 찍은 ‘센티멘탈한 여행’에서 발췌한 사진과, 요코가 암 판정으로 받고 세상을 떠나기까지를 기록한 사진을 모아  ‘센티멘탈한 여행 겨울여행 (センチメンタルな旅 冬の旅)’ 을 펴냅니다. 이번에 도쿄도사진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는 아라키가 요코와 함께 했던 시간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사진전입니다. 그녀와 결혼한 때부터 사망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리뉴얼해서 굉장히 깔끔하고 좋아진 도쿄도사진미술관입니다.

리뉴얼 후에는 TOP MUSEUM이라는 이름을 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전의 포스터


사진전은 몇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고, 아라키가 요코와 결혼한 것부터 시작해 그녀가 사망하기까지 시간순으로 배열이 되어 있어 따라가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입장할 때 작품 목록과 설명이 들어간 유인물을 하나 주는데, 참고하면서 감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시된 사진은 굉장히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작은 사진, 큰 사진 뿐만이 아니라 흑백에서 컬러 사진이 되기도 하고, 액자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여러가지인데, 사진에 따라 효과적으로 잘 배치했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섹션을 나누면서 구역도 잘 나누어 두어서 감정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끝까지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전 타이틀은 ‘센티멘탈한 여행’ 이지만, 사진은 굉장히 대담하면서 강렬한 사진이 많습니다. 어떤 사진들은 똑바로 보기가 힘들 정도로 선정적이거나 때로는 역하게 느껴지기까지 해요. 그랬던 것이 요코의 죽음 전후 (특히 후) 에는 그의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이 되어 갑니다. 요코의 투병 도중, 그리고 병세가 급변했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헐레벌떡 갈 때도 그는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사진들에는 절망과 슬픔이 절절히 묻어나고, 요코를 잃고 난 이후의 사진을 보면 “이게 진짜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인가?” 싶을 정도로 정적과 허무를 느끼는 사진이 됩니다. 그 감정의 변화를 사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받아온 유인물과 티켓


제가 전시를 보면서 정말 좋았던 요코의 사진이 엽서가 되어 있길래 사왔습니다. 

이 사진은 요코의 영정사진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아라키의 사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그의 사진을 좋아할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전에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가 이 사진전에서 보여 준 사진들은 모두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진을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전의 사진들은 시간의 흐름과 어떤 사건과, 그 사건에 의한 아라키 자신의 감정을 절절하게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이 사진을 보면서 충격을 받거나, 역하게 느끼거나, 슬프다고 느끼는 것은 이것이 ‘진짜’ 를 ‘기록’ 한 사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사진전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단, 사진전을 보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이 사진전이 고인에 대한 모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진을 보면 아라키는 이 세상에 찍으면 안 되는 것은 없다! 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정말 그럴까요? 요코 생전에 출판한 사진들은 물론 본인의 허락을 받았겠지만, 그녀가 사망한 이후의 얼굴 사진 등은 본인의 허락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런 식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또다시 보여지게 되는 것이 저는 마음에 걸렸습니다. 고인에게도 그렇지만, 그 유족이나 관계자를 다시 상처받게 하는 건 아닐지요. 허락을 받았는지 어떤지는 제가 알 수 없지만...같은 사진전을 보신 분과 함께 사진의 모럴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집니다. 


오랜만에 좋은 전시를 봐서 길게 적어 보았습니다.



##그 외


1. 도쿄도사진미술관의 코인로커가 무료입니다. 짐을 넣을 때 100엔을 넣어야 하지만, 짐을 꺼내면 다시 돌려줍니다. 

2. 주말 낮에 갔는데 사람은 꽤 있었지만 관람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