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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일본에서 스노보드 타기 ①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키장에



정말 뜬금없는 글이지만, 제가 일본에서 스노보드를 배우고 타게 된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사실 스노보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얼마 전에 겨우 턴을 할 수 있게 된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인데요...

한국에서 일본에 스노보드 타러 오시는 분들 글은 가끔 봤는데, 아예 타지 못하는 사람이 여기서 스노보드를 시작한 경우는 (제가 찾아봤을 땐) 없었던 것 같아서 적어봅니다.

혹시 도움받을 분이 계실지도...또 미천한 경험이지만 다 잊어버리기 전에 어딘가에 기록해 두고 싶어서요. 


저는 한국에서는 스노보드는 커녕 스키장에 가 본 일도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 중에 스노보드나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없었고, 딱히 영향을 받을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개인적으로 운동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긴 합니다. 


일본은 옛날이지만 버블시대에 엄청난 스키 붐이 일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도 스키장에 가보면 나이드신 분들 중에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분들이 많고요. 그 분들이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도 전파해서 가족이 다 함께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일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산지가 꽤 넓게 분포해 있기 때문에 (니이가타현이나 나가노현 등) 그쪽에서 스키장이 다수 건설되고 겨울 스포츠가 보급된 것도 있고요.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스키나 스노보드 중에 하나는 경험해 본 사람이 한국보다 많은 느낌이 듭니다. 


제가 스노보드에 관심을 가진 건 2015년 겨울입니다. 당시에 친해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스노보더였고, 당시에 일도 약간 안정되고 제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스노보드를 타 본 적은 없었지만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었고, 멋있다는 생각은 한 적이 있었고요. 저렇게 멋있게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와 똑같이 한 번도 스노보드를 타 본 적이 없는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무작정 일본에서 스노보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스노보더였던 친구에게 물어 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했어요. 그러면서 한 사이트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http://www.orion-ski.jp/fair/special/friend/


‘오리온 투어’ 라는 사이트의 특설 페이지이고요, 친구를 스키장(겔렌데) 에 데뷔시키자! 라는 내용인데, 스키장까지 왕복 버스 이용료 + 스키장 리프트권부터 시작해서, 초보자도 참가하기 쉽게 플랜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내용은 맘대로 빼거나 더하거나 할 수 있고요, 괜찮아 보이는 스키장을 골라 예약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당시 저는 스노보드를 타는 데에 필요한 물품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친구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왕복 버스 / 스키장 1일 리프트권 / 스노보드 강습 2시간 / 스노보드 + 부츠 +보드복 + 고글 + 장갑 등 전부 렌탈이 포함된 플랜을 선택했습니다. 스키장은 제일 도착이 빠른 곳, 또 가격을 생각해서 골랐는데, 지금도 위에 있는 페이지의 제일 처음에 실려 있네요. 나가노현에 위치한 HAKUBA VALLEY 鹿島槍 (하쿠바 밸리 카시마야리)라는 스키장이었습니다. 같은 조건으로 주말 출발로 검색해보니 12,600엔입니다. 당시에도 그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예약을 하고, 당일이 되어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신주쿠에서 아침 6시 50분에 출발이었는데 스키장에 도착하니 11시 반 정도 되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 산에 일단 한번 감동해주고, 렌탈을 하러 갔죠.

그런데 렌탈한 물품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어요. 보드복과 장갑은 꼬질꼬질 때가 타있고, 모자에선 냄새가 진동하고요. 보드는 어찌나 상태가 좋지 않았던지 발을 결합하는...바인딩이라고 하나요? 그 부분이 지금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습니다. 친구가 빌린 것도 마찬가지였죠. 

스키장 안에 옷을 갈아입는 곳이 있는데, 그냥 널찍한 방 한칸이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짐은 코인로커에 맡겨야 합니다. 보통 400-500엔정도 하고요. 

처음엔 부츠를 신는 법이나 웨어 입는 법도 몰라 대강 감으로 꿰어 입고 강습을 들으러 갔습니다.

일본에서 스노보드 강습은 거의 모든 스키장에 있지만, 대부분 2시간짜리이고, 가격은 보통 3000엔-4000엔 정도 합니다. 한국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강습은 1대 다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2시간 갖고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기본을 가르쳐주고 한명씩 한명씩 그대로 해보면 2시간이 휙 지나가 버리죠. 하지만 스노보드를 전혀 몰랐고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던 저에게는 필수였어요.


그런데 이때 정말 운이 나빴던 게 함께 강습을 듣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의 바인딩이 부러지는 바람에 강사가 그걸 수습하느라 제대로 강습을 못해줬던 것...

인사 → 부츠신는 법, 보드에 발을 결합하는법 배움 → 스키장에서의 매너 배움 → 평지에서 한 발로 보드 끌면서 이동하는 법 배움 → 가볍게 경사가 있는 곳에서 보드에 몸을 싣고 슬슬 움직이는 법 배움 (여기서 강습 듣던 사람 바인딩 고장) → 선생님이 수습하러 감 → 선생님이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리프트를 타러가자고 함 → 초보자 코스에 끌려가 넘어지면서 내려옴 → 시간 끝나 선생님 인사하고 사라짐 

이런 순이었습니다.

강습 시간 내에 반드시 리프트를 한 번은 타야 하는 강습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강사가 저렇게 무리를 해서 데려갔을까 싶고.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처절한 스키장 데뷔였네요…


두시 반에 강습이 끝나 친구와 저는 둘이서 경사가 심하지 않은 데에서 연습을 해 보았지만, 리프트도 못 타는 초보자가 할 수 있는 연습이란 그리 많지 않았죠. 

당시에 생각했던 건 이게 스노보드인가...? 1도 모르겠다 하는거랑 리프트에서 내릴 때 너무 무서웠던 게 기억이 납니다. 

다섯시에는 돌아가는 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친구와 저는 네시 반에 스노보드 연습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버스에 지친 몸을 싣고는 도쿄로 돌아왔습니다. 

주말이었기 때문에 고속도로의 정체도 엄청났어요. 집에 돌아온건 한밤중이나 되어서였습니다.


당시에 함께 스키장에 가준 친구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는지 이것저것 찾아본 모양이었습니다.

그 후에 얼마 안 있어 친구가 함께 가자고 제안해준 곳이 이곳이었습니다.


사야마 스키장

http://www.sayama-ski.jp/ski_web/


이곳은 이름 그대로 사이타마의 사야마에 있는 스키장입니다. 실내 스키장이라 코스가 딱 하나뿐이고 그나마도 초심자용 코스라 스노보드를 잘 타시는 분이면 따분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도쿄 도심에서 1시간 정도에 갈 수 있어서 접근성이 굉장히 좋고, 실내 스키장이기 때문에 날씨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여기에서는 인공 눈을 이용하고 있는데, 진짜 눈과는 질감이 꽤 다르지만 항상 푹신함을 유지하는 편입니다.

이곳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쓰도록 할게요.


사야마 스키장에서도 보드복, 부츠 등 스노보드 용품 렌탈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는 카시마야리 스키장에서 빌렸던 보드복의 상태가 너무나 어처구니 없었기 때문에 보드복과 그 외 용품들을 구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음 편에선 제가 보드 용품을 어떻게 구매했는지 쓰도록 하겠습니다.